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1>
한국 온라인 게임의 원조 '쥬라기공원'
온라인 게임이 서비스되기 시작한지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머드게임에서 그래픽이 지원되는 머그 게임으로 다시 3D 게임으로 온라인 게임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온라인 게임은 이제 명실공히 게임의 한 역사를 담당할 정도로 큰 성장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국내 온라인 게임은 기술적인 발전과 향상된 그래픽을 기반으로 전세계 시장을 석권할 것이다. 본지에서는 온라인 게임이 지나온 발자취와 숨은 얘기를 모아 온라인 게임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추억의 온라인 게임, 소설형 'MUD 게임'
'온라인 게임도 추억의 게임이 있다' 현재 온라인 게임의 기술은 PC게임 수준까지 그래픽이 올라갔다. 비록 PC게임에 등장하는3D의 모습은 아니지만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PC게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이 이처럼 발달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처럼 온라인 게임도 10년의 역사를 지니면서 2D그래픽에서 3D로, 다시 PC게임에 맞먹는 그래픽을 구현하기까지 이르렀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온라인 게임의 최초 모습은 그래픽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소설형' 게임인 MUD(Multi User Dungeon)게임이었다.
그래픽이 지원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머드게임을 하기 위해 1∼2시간 가량 데이터를 전송받아 게임을 했다. 지금도 전화결제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당시에는 전화선에 연결된 상태에서 전송을 받았기 때문에 전화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많은 전화비를 부담하기 위해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한 유저가 있을 정도였다.
머드게임은 1994년 한국 사회의 새로운 놀이문화로 등장했다. 머드란 용어는 영국의 R.바틀과 R.트럽쇼에 의해서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머드게임은 웹이 등장하기 전의 인터넷을 통해서 즐길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이미 선구자적인 게이머들이 영어로 진행되는 머드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당시의 머드게임은 그래픽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텍스트로만 진행되었다.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머드를 즐기는 유저 수는 극히 미미했다.
국내에서 머드게임이 부각된 것은 1994년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쥬라기공원' 때부터다.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사용했던 천리안과 하이텔 등의 PC통신을 통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급속도로 퍼졌다.
'쥬라기공원'의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게이머들은 그 안에서의 생활 자체를 즐기며 게임을 진행했다. 곧 현재의 온라인 게임과 비슷한 형태로 게임이 진행되며 온라인 게임의 모습을 서서히 갖추기 시작했다.
'쥬라기공원'이 비록 머드게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의 BBS(Bulletin Board System. 특정 형태의 네트워크 - 전화선 - 를 통해 접속하여 파일 및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국내에는 HiTEL이나 천리안 같은 대형 BBS들이 유명하다)를 통해 서비스되던 게임만 무려 100여종에 달하게 됐다.
비록 그래픽이 지원되지 않는 게임이지만 게임자체의 중독성은 현재 온라인 게임보다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를 중심으로 머드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고시촌이라 불리는 서울 신림동에서도 머드게임이 유행했다. 게임의 중독성이 심해 한번 게임에 빠지면 고시를 포기하는 단계까지 가는 고시생이 늘어 머드게임 경계 주의보가 발령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게임 진행은 메시지로 진행된다. '고도 1만피트. 구름이 간간이 떠 있고 하늘은 맑은 편. 폭격기를 호위중이다.'란 메시지가 뜨면 또 다시 '11시 방향에 적기 11대 출현.' 적기의 출현을 알리는 최초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11대가 아니라 12대입니다" 흐릿하게 한 대처럼 보이던 기체가 둘로 나뉘는 상황 변화에 따라 정정해 알린다. 순간 편대장의 명령이 떨어진다. "산개!"
머드로 즐기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의 일부다. 이런 게임처럼 문자로 알려오는 시나리오에 맞춰 임기응변식의 대사와 행동지시로 게임을 풀어나간다. 이런 형태의 게임은 머드게임에서만 가능해 아직도 머드게임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는 유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드게임수가 100여종에 달했지만 머드게임의 인기를 끌어올린 것은 한국적 색채가 강한 마리텔레콤의 '단군의 땅'이었다.
마리텔레콤 장인경 사장은 "지금의 온라인 게임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단한 인기였다"며 "상상력을 기반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서비스되는 온라인 게임과는 다른 재미가 존재했다. 비록 현재 게임을 즐기는 사람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항상 많은 사람들이 게임상에서 게임을 즐겼다"며 당시 인기를 회고했다.
현재 온라인 게임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미진출도 머드게임을 통해 처음 이뤄졌다. '단군의 땅' 서비스를 통해 처음 받은 돈은 26달러40센트였다.
'단군의 땅'이나 '쥬라기공원' 등은 텍스트 기반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게임은 어찌보면 채팅과 유사한 성격을 지녀 현재처럼 수많은 유저를 끌어 모으진 못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임개발 회사들은 이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게 됐다. 머드게임이 갖고 있는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게임이 1996년 등장하면서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게 됐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2>
전혀 새로운 형태의 게임… '리니지' 출현
96년 온라인게임은 새로운 변화를 겪으며 일신우일신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점과 선으로만 이뤄져 진행되던 게임에 그래픽이 첨가되면서 온라인게임은 전환기를 맞이했다.
넥슨에서는 96년 '바람의 나라'를 개발, 서비스를 시작했다. '바람의 나라'는 기존 머드게임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그래픽을 첨가한 머그(머드+그래픽)게임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 서버기술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리니지'
지금 온라인 게임과 비교해 보면 그래픽이 뛰어나진 않지만 당시 점과 선으로만 이뤄진 게임을 접해본 유저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람의 나라'가 서비스되면서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온라인게임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온라인게임 개발이 시작된 것은 '바람의 나라'의 서비스와 함께 '리니지'라는 또 다른 게임이 서비스되면서 부터다.
현재 온라인게임의 대표 주자로 부각된 '리니지' 게임은 당시 '바람의 나라'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유저들을 흥분시켰다. 기존 '바람의 나라'가 머드게임에 그래픽만을 얹어 90%가량이 머드게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이지만 '리니지'는 완전히 머드게임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형태의 게임으로 유저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게임이 나오게 되면서 송재경이라는 게임개발자를 떠올리게 된다. 송재경씨는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후 또 다시 '리니지'라는 게임을 개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개발자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당시 송재경 개발자는 '리니지' 프로젝트를 넥슨에서 아이네트로 다시 현재 엔씨소프트를 만든 김택진 사장을 만나서 결실을 맺었다. '리니지' 게임은 국내 처음 머그게임은 아니지만 온라인게임 관련, 다양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열풍을 안고 시작된 PC방 중심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온라인게임도 '리니지'가 처음이였다. 특히 '리니지'의 경우 '바람의 나라'나 다른 머드 게임과 다르기 때문에 기존 서버 기술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서비스됐다.
이때부터 이미 한국의 서버 기술은 세계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이런 이유 때문에 동시접속자 1백명을 넘기는 순간 자축을 했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가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도 나뉘어졌다. 서울의 경우 강남권이나 신촌 등지의 경우 '리니지'가 유행했으며 강북 또는 대학가 주변은 '바람의 나라'가 인기를 얻어 새로운 게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리니지'는 동시접속자 1백명을 넘기면서 유저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으며 서비스 일년만인 99년 12월 동시접속자 1만명, 이후 2000년 12월에는 동시접속자수 10만명이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로 대변되는 온라인게임 업계에서는 이후 '리니지'의 연속적인 해외시장 진출의 성공과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의 등장을 예고했다
■ 리니지 서비스 이후 동접 추이
2001.12 = 세계 최초 동시접속자수 30만 돌파
2000.12 = 국내 최초 동시접속자수 10만 돌파
1999.12 = 국내 최초 동시접속자수 1만 돌파
1998.12 = 국내 온라인게임 최초 동시접속자수 1천 돌파
1998. 9 = 인터넷 기반 그래픽 머드게임 「리니지」 국내 상용화
1997. 3 = 엔씨소프트 창립
온라인게임 산실 '카이스트(KAIST)'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카이스트(KAIST)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초반 카이스트 출신 장인경 사장이 설립한 마리텔레콤. 이 회사에서는 머드게임인 '단군의 땅'과 '쥬라기 원시전'을 만들어 국내 최초로 온라인게임을 선보였다.
이후 카이스트 출신인 김정주씨와 이민교씨 등이 모여 설립한 넥슨이 도스 기반으로 만든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바람의 나라'와 필적할만한 게임으로 손꼽히는 '영웅문'을 만든 태울 역시 카이스트 출신인 조현태 사장의 작품이며 세계 최고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의 개발자인 송재경씨 역시 카이스트 출신이다.
카이스트가 국내 온라인 게임의 메카로 자리잡은 데는 지난 92년 국내최초로 구축된 학내 전산망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트워크가 기숙사까지 깔려 있어 심심풀이로 시작해 만든 게임들이 PC통신 등을 통해 서비스되면서 머드게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국내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송재경씨가 NC소프트 김택진 사장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중흥기를 맡는다. 김 사장은 송재경씨의 능력을 인정, 모든 게임개발을 맡겼으며 이로써 탄생한 게임이 '리니지'인 것이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3>
'포트리스' 등장… 온라인게임 경쟁시대 '돌입'
10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온라인게임이지만 성장 속도면에서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머드게임을 시작으로 출발한 온라인게임은 채 7년이 지나기도 전에 머그게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머드게임이나 머그게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기보다는 매니아적 성격이 강하다 할 수 있다. 머그게임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매니아성 위주로 발달해 협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국민게임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간편한 게임이 등장했다. CCR에서 개발한 '포트리스'게임이 그것이다.
온라인 게임 시장의 치열한 경쟁시대 열어
온라인게임인 '포트리스'는 포병을 연상할 수 있는 게임으로 간편한 인터페이스는 물론 쉬운 게임진행으로 인해 게임을 전혀 몰라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와함께 급속도로 불어난 '고스톱'을 즐기는 아줌마의 파워도 온라인게임의 전국민화를 부채질했다.
'포트리스'를 계기로 매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게임이 급속도로 일반인들에게 퍼지면서 온라인게임은 단순히 게임이 아닌 놀이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온라인 게임이 일반인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려는 업체들도 우후죽순으로 등장, 온라인게임 시장은 치열한 경쟁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넥슨의 '바람의 나라' 등이 빠른 성장을 보이면서 매출이 급등, 수많은 온라인 게임 개발사들의 탄생을 예고했다. 당시 대기업이나 통신업체들의 온라인게임 산업진출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현대, 삼성, SK등이 적극적인 진출을 시도했으며 한국통신, 드림라인, 한솔텔레콤 등도 온라인게임 산업 진출을 했다. 또한 '포트리스'와 같은 캐주얼 느낌의 게임들도 속속 개발됐고 한게임(현재 NHN)에서 서비스한 '고스톱'과 같은 웹보드 게임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새로운 게임장르를 구축했다.
이처럼 온라인게임이 국민적 게임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투자자들이나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PC방의 증가도 또다른 사회현상의 하나로 나타났다.
비록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등장과 함께 PC방이 태동했지만 안정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모뎀보다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PC방은 온라인게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이 국민 게임으로 성장했지만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와 함께 정책의 부재로 인한 혼선도 나타난다. 이같은 사회적 문제와 산업의 발전에 따른 정책의 부재는 온라인게임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으며 현재까지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장한다.
게임의 중독성, 아이템의 현금거래로 인한 인명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온라인게임에 대한 성격규명과 규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자체적인 정화노력과 함께 온라인게임 심의와 관련돼 폭넓은 의견을 나누고 있다.
■ 2000년 국내게임시장 플랫폼 별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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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비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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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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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 |
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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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게임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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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게임 |
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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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게임 |
61.4% |
■ 2000년 온라인게임 유료서비스 업체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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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업체 |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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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
리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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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
바람의나라, 일랜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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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토즈소프트 |
천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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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 |
영웅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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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엔터테인먼트 |
레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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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R |
포트리스 |
CCR과 PC방 '갈등'
온라인게임이 빠른 성장을 보였지만 한가지 걸림돌이 존재했다. 바로 유료화 모델을 찾는 문제였다. 비록 '리니지', '영웅문' 등은 월 정액 방식을 채택, 유료 모델의 문제를 피해갔지만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즐겼던 '포트리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게임을 무료로 서비스했기 때문이다. 당시 '포트리스'의 경우 유료로 전환할 경우 게임을 즐길 것인가에 대해 유저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포트리스'를 서비스한 CCR측은 유료 모델 찾기에 부심했다.
최종적으로 CCR에서 내린 결론은 PC방 유료 모델. 당시 온라인게임을 주로 즐겼던 장소가 PC방인 점을 감안했을 때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주들에게는 천청벽력이었다. 이에 당시 PC방 협회에서는 CCR 회사를 직접 방문하는 한편 대대적인 시위를 펼치는 등 PC방 유료에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PC방 유료로 사건을 일단락됐지만 이 일로 인해 온라인게임 업체들과 PC방 사업주들간의 신경전은 지속됐다. 한때 온라인게임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거동락 했었지만 CCR과 PC방 사업주와의 갈등은 적과의 동침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PC방 사업주들과 CCR의 갈등구조 양상은 좀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게임산업에 찬물을 끼얹은 것일 수도 있다"며 "만약 그 당시 그런 일이 없었다면 PC방도 이처럼 쇠약해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4>
'뮤' 대박신화… 3D시대 '개척'
온라인게임의 대 변신이 진행되고 있다. 머드게임에서 시작된 온라인게임은 '리니지'를 비롯한 2D온라인게임이 등장하면서 성공신화가 시작됐으며 3D 온라인게임의 등장은 명실공히 한국을 온라인게임 강국으로 부상시켰다.
3D온라인게임 등장은 온라인게임 시장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리니지'와 '바람이 나라' 등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와 비슷한 아류작이 속출하는 가운데 3D 온라인게임의 등장은 신규시장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3D온라인 게임 탄생으로 신규유저 창출과 틈새시장 공략 가능해져
3D온라인게임의 리더는 단연 웹젠의 '뮤'라 할 수 있다. 현재 '뮤'는 최고동시접속자가 8만5천명명에 이를 정도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뭉쳐 만든 웹젠은 만들기전부터 난항을 예고했다.
게임업계 누구도 그들이 3D온라인게임을 개발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무모했다. 특히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에도 발생하는 렉 현상은 웹젠이 넘어야 할 과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웹젠은 서버 문제를 해결하며 3D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와함께 나코인터랙티브의 '라그하임'도 3D 온라인게임 개발을 부채질했다. 당시 '라그하임'을 서비스했던 나코인터랙티브는 서버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3D로 제작한 온라인게임이 충분히 서비스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3D 온라인게임의 태동은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신규유저 창출과 함께 틈새시장 공략이라는 숙제를 해결해줬다. 그동안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포트리스' 등이 전체 온라인게임 시장을 차지했던 상황에서 3D온라인게임의 등장은 단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도 3D온라인게임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를 개발, 패키지 게임 이상 가는 그래픽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록 컴퓨터 사양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함께 3D 온라인 게임의 등장은 다양한 게임의 등장을 선도했다. 우선 카툰랜더링 방식의 온라인게임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으며 또한 배경은 3D이지만 캐릭터는 2D인 '라그나로크'란 게임도 태동시켰다. 온라인 게임 시장을 더욱 확장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3D와 2D를 활용, 차별화된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업체들이 속속 등장, 향후 온라인게임은 더욱 다양한 차별요소를 갖추고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게임과 차별화된 게임의 등장은 신규 유저 창출로 인한 게임시장의 성장을 예고했으며 웹젠이 나스닥 상장을 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 시기에 맞춰 '포트리스'의 뒤를 잇는 캐주얼 게임의 등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뮤' 등과 차별화를 선언하며 주 고객을 초등학생으로까지 확대시킨 캐주얼 게임은 온라인게임의 성장을 부추긴 요소다. 특히 단순한 월정액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템 판매라는 새로운 수익모델 제시는 MMORPG처럼 개발기간이 오래 걸려 개발사정이 안 좋은 업체들에게는 캐주얼게임처럼 단순한 게임일지라도 충분히 돈이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해 줬다.
캐주얼 게임의 성장과 3D온라인게임의 등장으로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더욱 성장했으며 세계 제1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이처럼 빠른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게임은 새로운 복병을 만나게 된다. 바로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가 그것.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현재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남겨진 과제라 할 수 있다
3D신화 '뮤'와'리니지2'
3D 온라인게임이 서비스되기 시작한 2001년. 당시 3D 온라인게임의 서비스는 많은 업체들에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컸다. 그만큼 서버기술력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었기 때문.
그러나 웹젠과 나코인터랙티브는 과감히 선보였고 온라인 상에서 게임이 시연됐다. 이렇게 시작된 3D온라인게임의 역사는 만 2년이 된 현재 패키지 게임 이상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리니지2'라는 게임의 탄생까지 이어졌다.
'리니지2'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절대 온라인게임이 아니다라는 것이 중론. 처음 '리니지2'가 선보였을때도 유저들과 업계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엔씨소프트는 또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비록 컴퓨터 사양이 강조되지만 이 문제는 쉽게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3D온라인게임인 '뮤', '라그하임'이후 '리니지2'가 탄생하기까지 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앞으로 온라인게임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패키지 게임에서도 이룩하지 못한 경지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업체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5>
중독성·현금거래, 부처간 밥그릇 싸움 '눈총'
온라인게임 날개를 달 것인가 아니면 추락할 것인가?' 온라인게임이 산업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사회적인 문제 등이 발생하며 새로운 갈등이 시작됐다.
온라인게임의 발전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맞춘 정책적 대안의 부재와 함께 온라인게임의 문화인식 부족이 낳은 결과로 보여진다.
'온라인게임 날개를 달 것인가 아니면 추락할 것인가?'
온라인게임의 발전에 가장 발목을 잡았던 것은 중독성과 현금거래. 현재도 이 부분은 온라인게임의 아킬레스건으로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를 야기시켰던 온라인게임의 중독은 청소년 보호와 결부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온라인게임 중독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유저가 발생하는 한편 '폐인'이라는 단어가 온라인게임상에 공공연히 나돌면서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게임으로 재미를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온라인게임을 통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온라인게임에 대한 재인식의 문제가 도출됐다.
특히 온라인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조사되면서 온라인게임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 게임물 등급분류를 처음으로 실시했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는 그동안 22종의 온라인게임만이 등급심사를 받았지만 이를 강화, 2002년 9월부터 모든 온라인게임은 등급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영등위의 규제강화는 온라인게임업체와의 충돌로 이어져 현재까지 대립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등위의 온라인게임 규제와 관련된 문제는 앞으로 업계와 각계 각층이 적극 나서 해결해야 할 온라인게임의 화두다.
온라인게임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부처간 밥그릇 싸움도 온라인게임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요소였다.
온라인게임이 점차 국가 기반 산업으로까지 성장하면서 관련 부처인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은 온라인 게임이 자기 부처 소관인 점을 내세워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실제 온라인게임의 발전보다는 업체들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규제도 강화되면서 이중 부담을 안겨줬다. 현재도 부처간 밥그릇 싸움은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며 온라인게임이 성장하면 할수록 더 큰 장애요소가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정책의 부재, 온라인게임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 등이 있지만 온라인게임은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게임업체들은 속속 온라인게임 개발을 진행했으며 국내 게임산업은 단지 온라인게임으로만 편식되는 양상을 보이게 됐다.
업체의 난립은 온라인게임 발전에 또다른 장애요소로 등장한다.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다양한 장르의 온라인게임이 생겨나는 등 외형적인 모습은 커졌지만 내부적으로는 빈부의 격차 심화, 중소 온라인게임의 도산 등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특히 경쟁력없는 게임들이 대거 출시되면서 전체 온라인게임의 발전을 저해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밖에 업계간 단결력 부족이나 수익모델의 부재 등도 온라인게임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작권에 대한 이해 부족 등도 온라인게임이 넘어야 할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업체 한 관계자의 "내부 문제만 빠른 시일내에 정리되면 온라인게임 산업은 날개를 단 격이 될 것"이라며 "지금 중국 등에서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이 추락할 수도 있다"는 말이 허투른 소리가 아니라는 점을 업체뿐 아니라 관련 종사자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 분쟁 '급증'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 중 잘 나간다(?)는 업체들은 대부분 소송에 휘말린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저작권 침해 등이 이유가 됐으며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저작권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난 2001년에는 '포트리스'를 서비스했던 CCR이 넷츠고에 의해 저작권 침해로 가처분이 신청됐으며 엔씨소프트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원작자인 신일숙씨 등에 의해 가처분 신청서가 제출됐다. 그 뒤를 이어 넥슨, 엠게임 등도 법정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 등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졌다.
업체 일각에서는 이런 법정 구설수에 대해 온라인게임이 급성장하면서 저작권 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줄곧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생긴 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도 지속적으로 저작권이나 게임베끼기 등에 대한 문제가 발생, 이점에 대한 업체들의 숙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6>
해외 시장 개척···중국 '찍고' 북미·일본 '공략'
'한국 온라인게임의 승부수는 해외다.'
한국 온라인게임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2000년도 해외시장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부터다. 당시 새천년이라는 화두와 함께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중흥을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1998년도부터 온라인게임의 맹주인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해외 수출의 물꼬를 텄었다. 국산 온라인게임 수출 1호인 넥슨은 '넥서스'를 미국에 수출하면서 높은 인기를 유지, 미국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한국 온라인게임의 승부수는 해외다.'
엔씨소프트에서 개발한 '리니지'의 대만에서의 강세는 국내 온라인게임이 대만 등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내 업체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엔씨소프트의 성공에 힘입어 대만을 필두로 한 중화권 시장 진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대만의 경우 대만 시장 자체보다는 중국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서의 의미가 더 커 활발하게 이뤄졌다.
'리니지'이외에 '포트리스2', '영웅문', '레드문', '드래곤라자' 등 다수의 국내 온라인게임 들이 앞다퉈 대만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으며 당시 큰 인기를 구가했다. 일본시장도 국내 온라인게임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은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국내업체들의 진출이 가시화됐다.
아케이드 게임과 비디오게임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유선에 비해 무선인터넷이 당시에는 취약해 어려움은 있었지만 꾸준히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최근 그 가능성이 나타나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일본행 티켓을 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업체는 넥슨과 한게임. 당시 두업체는 현지법인을 설립, 1999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며 자리 굳히기에 주력했다. 또한 엔씨소프트도 소프트뱅크 등과 손잡고 일본에 상륙,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미국도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공략하기 위해 주력한 해외시장. 2000년 5월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포문을 열었다. 엔씨소프트는 미주시장 공략을 위해 갤리엇 형제 영입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당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엔씨소프트의 노력으로 최근 미주시장의 공략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해외시장 진출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주목한 곳은 중국시장. 12억이라는 인구를 가진 중국인만큼 성장 가능성은 어느 지역보다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비록 무선인터넷이 제대로 깔려있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초기 선점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했으며 2002년부터 '미르의전설'의 성공신화가 시작됐다.
국내에서 현재까지도 온라인상의 최고 동접은 20만명 가량으로 나타난다. 중국은 그러나 '미르의 전설'이 60만 동접이라는 기록을 보이며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다.
중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무협 온라인게임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기획안이 나타났다. '미르의 전설'이 그러나 중국업체와의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불법 서버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국내 온라인게임업체들에게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웹젠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중국시장에 진출, 또 다른 가능성을 국내 업체들에게 보여줬다. 비록 어려움은 있지만 중국시장은 충분히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기회의 땅이라는 점을 다시금 보여준다.
웹젠은 중국시장 진출시 합작법인을 설립, 법적인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했으며 불법서버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밝히는 등 대처에 나서고 있다. 중국 시장의 잠재력은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중국과 동남아에서 1억달러(추정치)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국내 온라인게임의 수출은 불과 4∼5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온라인게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지대하다. 짧은 온라인게임의 역사에서 수출의 역사는 그보다 짧다. 그러나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발빠른 움직임은 세계 게임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 중국시장 공략 팁
중국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려면 확실한 저녁을 대접하라.'
모든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비즈니스 역시 밤에 모든 일이 성립되며 국내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밤에 체결된다. 그만큼 밤은 비즈니스를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국내에서 비즈니스는 밤에 먹는 술에 의해 결정된다. 많은 국내 비즈니스맨들이 술로 인한 위염이나 장염에 걸리는 경우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을 상대할 때는 이런 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저녁식사를 하며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인 식사비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중국 모 업체 사장은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중국 비즈니스맨들을 상대할 때 술을 많이 먹는데 차라리 저녁식사를 하며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문했다.
각 나라에는 저마다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한국의 특성이 반영된 문화가 있으며 그에 맞춰 비즈니스도 이뤄진다.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면 우선 맛있는 집을 예약하는 것이 계약의 성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7>
마케팅 중요성 '대두'… 퍼블리셔 '본격 등장'
"모든 게임은 우리에게 오라" 온라인게임의 발전은 새로운 산업군을 탄생시키며 고공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온라인게임의 경우 게임성이나 기술력만으로 넘긴 힘든 벽이 존재했다. 마케팅이 그것.
마케팅은 다른 온라인게임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등장했으며 마케팅인력이 부족한 중소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는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줬다.
마케팅 부족으로 인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게임들이 사장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마케팅을 대행해 주는 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게임 퍼블리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2001년이 되면서 게임업계에는 퍼블리셔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장질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퍼블리셔의 역할이나 게임 산업 내에서의 위치 등이 성립되지 않았지만 중소업체들에게는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퍼블리셔 등장 후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가 커지고 해외진출 물꼬 틔워
2001년 게임퍼블리셔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장에 진입한 업체는 넷마블. 넷마블은 게임포털을 만들면서 중소 온라인게임들을 사이트내에서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처음 넷마블은 나코인터랙티브에서 개발한 3D '라그하임'을 서비스했다. 이에 '라그하임'은 빠른 시간내에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며 게임퍼블리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넷마블은 게임퍼블리셔를 내세워 시장내에서 빠른 성장을 거듭했다. 퍼블리셔의 등장은 마케팅력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온라인게임 산업 발전의 원동력을 열어줬다.
넷마블의 등장과 함께 고스톱, 포커 등을 서비스하던 한게임과 수익모델 부재로 고민하던 검색 포털들도 일제히 게임포털 사업을 전개했다. 또한 엔씨소프트, 웹젠 등의 업체도 게임 퍼블리셔 사업에 진출, 퍼블리셔 사업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퍼블리셔의 등장은 온라인게임 시장의 규모를 키웠으며 중소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수월하게 하는 등 순기능을 담당했다. 그러나 퍼블리셔들이 중소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입장보다 자사 입장을 견지하면서 전체 온라인게임 시장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퍼블리셔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중소온라인게임 업체들의 비난은 더욱 심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은 퍼블리셔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을 드러냈다.
퍼블리셔가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결과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불평등 계약 등의 현상까지 나타나자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퍼블리셔들의 자성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퍼블리셔가 온라인게임 업체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우선 마케팅이 게임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으며 새로운 마케팅 기법들이 나타나게 됐다.성인용 게임의 등장, 캐주얼 게임의 개발 활성화, 신규 아이템 등장 등 온라인게임 전반에서 마케팅에 대한 논의가 생겼다.퍼블리셔들은 이같은 비난이 쇄도하자 자체적으로 자성을 하면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넷마블이 중국 시나닷컴과 전략적제휴를 체결했으며 써니YNK도 일본진출을 위해 NTT도코모와 MOU를 맺는 등 국내 온라인게임의 해외진출에 디딤돌을 마련했다. 이와함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규게임 개발과 퍼블리셔의 역할 등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졌다.
아직 퍼블리셔의 등장이 국내 온라인게임의 역사를 발전시켰는지 후퇴시켰는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성급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의 시장 규모를 키웠다는 점과 해외진출에 물꼬를 텄다는 점 등은 인정받을 성과라 할 것이다.
한편 퍼블리셔의 등장과 함께 게임업계에는 협회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전투구 양상으로까지 치닫자 업계는 협회를 설립, 협의체 구성 등에 노력했다. 향후 온라인게임 업체 전반을 아우르는 협회가 등장할 예정이다. 현재 산재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합의하에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카르마 온라인' 퍼블리싱 성공사례
"벌써 동시접속자 8만을 넘었어요" 퍼블리셔가 게임시장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원인중 하나는 드래곤플라이에서 개발한 '카르마 온라인'의 성공적인 런칭이다.
넷마블에서 초기 서비스된 '카르마 온라인'은 중소 게임 개발업체에서 개발한 슈팅온라인 게임이다. 2003년초까지만 해도 슈팅 온라인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상태였지만 넷마블에서 서비스하며 동시접속자가 8만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중소온라인게임 업체에서 개발한 게임의 경우 아무리 게임성이 좋아도 시장에서 2만 이상을 넘기 힘들다고 판단했는데 넷마블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8만을 넘어서자 퍼블리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특히 퍼블리셔 사업을 준비하던 많은 포털들과 게임업체에서도 퍼블리셔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비록 '카르마 온라인'이 현재 동시접속자 1만이 안되는 게임으로 전락했지만 당시 '카르마 온라인'은 중소 온라인게임 업체와 퍼블리셔를 준비하는 업체들에게 있어 퍼블리셔에 대한 강한 인식을 남겨주는 게임이었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8>
장르 다변화 '시동'…FPS '두각'
올해 뜰 장르는 무엇인가?' 온라인 게임의 장르 다변화가 게임업계의 화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처음 온라인 게임의 시작은 단순한 MMORPG형태였다. 판타지이면서 MMORPG 성격이 강한 대표적 게임은 단연 '리니지'. 그 뒤를 이어 '뮤'가 등장하면서 판타지풍의 MMORPG는 온라인 게임을 대표하는 장르였다.
그러나 '리니지'가 국내 온라인 게임을 이끌던 99년도에 '리니지'의 동시접속자를 넘는 게임 '포트리스'의 서비스는 판타지풍의 MMORPG이외에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2002년부터 온라인 게임 업체들의 장르 다변화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FPS(1인칭 슈팅게임), 무협게임, 레이싱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장르' 다양화
FPS게임인 '카르마온라인'의 성공과 함께 아케이드 게임을 온라인 게임으로 컨버전해 서비스된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인기, 무협 온라인 게임의 등장 등은 온라인 게임의 장르와 MMORPG형태의 게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부채질했다.
온라인 게임의 장르 다변화의 성공 가능성을 내비친 게임은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해 서비스하고 있는 '미르의 전설2'. 2000년도 국내 최고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벽을 넘기 위해 온라인 게임 업체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MMORPG의 장르 개발에 주력, 무협을 소재로 한 '미르의 전설2'가 등장했다.
'미르의 전설2'의 등장은 초기 '포트리스'로 인해 MMORPG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충분히 시장에서 유저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업계에 확인시켰다. 이후 무협게임 개발에 주력, '디오'와 '시아', '운' 등이 시장진입에 성공했으며 무협 장르가 새로운 온라인 게임의 대표적 장르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
그라비티에서 개발한 '라그나로크'는 판타지풍의 MMORPG이지만 캐주얼 느낌을 줌으로써 업계에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온라인 게임의 소외 계층으로 인식돼던 여성계층과 어린층을 공략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한 것이다. 온라인 게임 업체들이 판타지풍이면서 MMORPG게임이지만 '리니지'의 시장과 전혀 다른 틈새시장 형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미르의 전설2'와 '라그나로크'의 국내 시장 진입 성공은 국내 온라인 게임 업체들이 단순히 판타지풍의 MMORPG에만 국한돼 게임을 개발하기 보다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레이싱 게임 등장
레이싱 게임의 등장도 온라인 게임 업계에는 틈새시장 공략을 한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디지털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한 '시티레이서'는 레이싱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이나 새로운 게임을 기다리는 유저들에게 참신한 게임으로 다가갔다.
판타지 MMORPG와 전혀 장르가 다른 레이싱, FPS 게임이 성공하면서 '라그나로크'처럼 판타지 요소가 가미됐지만 느낌이 전혀 다른 호러, 캐주얼, 성인용 게임들의 개발도 더욱 본격화됐다. 2002년 이후 온라인 게임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2년은 이런 온라인 게임의 장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면서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온라인 게임의 춘추전국시대가 열었다.
이 같은 춘추전국시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기술적인 진보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서버나 클라이언트 기술의 발달은 온라인상에서 구현하기 힘든 다양한 장르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향후 온라인 게임은 비디오게임이나 PC게임처럼 더욱 다양한 장르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진보와 새로운 아이템의 개발은 온라인 게임을 한층 더 성숙시켜 나갈 것이다
≫ 게임베끼기 '증가'
온라인 게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임베끼기 현상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 게임 업계에는 때아닌 법정공방이 치열하다.
'리니지'와 '뮤' 등의 온라인 게임이 RPG시장을 독주하면서 온라인 게임 업체들은 다양한 장르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다른 온라인 게임을 베끼는데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저들도 이 때문에 온라인 게임들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에 실망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온라인 게임 업체들의 게임베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같은 장르 따라하기, 비슷한 시스템 채용 등이 가장 많다. 이런 현상은 틈새시장 공략이라는 화두는 해결했지만 업체들에게 또다른 과제를 안겨줬다. 법정공방과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부재가 그것.
처음 머드게임에서 '바람의 나라'란 머그게임이 등장했다. 이후 온라인 게임의 혁신이라 부를 수 있는 '리니지'의 탄생과 3D온라인 게임의 선봉장인 '뮤'가 나타났다. 당시 온라인 게임의 역사에서 게임베끼기는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게임은 정체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지 게임베끼기에 멈춰선 느낌이다. 온라인 게임 업체들은 게임베끼기가 아니라 자사의 독창적인 게임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업계에 독창적이고 자사의 색깔을 담은 게임을 개발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9>
게임산업개발원 역할 '증대'
온라인게임의 역사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빠른 성장을 보이며 게임의 중추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비록 전세계적으로 온라인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지만 국내에서 온라인게임은 반드시 성장시켜야 할 주요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정부에서도 온라인게임의 발전에 대해 예전과 달리 국가 기반 산업으로 인식하면서 투자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정부가 이처럼 게임이란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배경에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임산업이 점차 커지면서 게임을 성장시키기 위해 정책적인 지원이나 다양한 지원 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됐다. 업체들은 이에따라 게임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으며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태동된 배경이 됐다.
당시 게임종합지원센터(현재 한국산업개발원·이하 개발원)로 출발했던 개발원은 게임분야 투자 활성화, 지원 확충, 신규시장 개척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개발원의 역사를 조명하는 것에 대해 이르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현재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게임산업을 볼 때 향후 게임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할 개발원을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할 것이다.
개발원 태동은 1999년. 올해 5년차에 접어들었으며 그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5년간이지만 원장만 4차례 바뀌는 시련을 겪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만큼 게임산업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을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으로의 정립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경우에는 업체와 정부기관과의 산업이해에 대한 입장차이가 커 개발원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어려움속에서도 개발원은 게임 정책 수립이나 신규시장 개척, 산업으로 재정립 등의 현안을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특히 그동안 게임개발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던 게임개발인력을 키우기 위한 아카데미 설립 등의 노력으로 업계로부터 일정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 개발원은 우선적으로 그동안 자료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을 위해 자료 수집 등에 집중된 사업을 펼쳤다. 갑작스럽게 온라인게임이 급상승해 개발원의 자료 수집 역할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자료 수집과 함께 개발원에서 주력했던 것은 신규 게임에 대한 투자와 신규시장인 해외시장 개척이었다.
개발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발원은 업계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게임업계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책들을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개발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투자도 전혀 활성화 안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발원은 이런 지적이 자주 제기됨에 따라 투자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해외시장 개척을 통한 국내 온라인게임의 투자에 적극 나섰다. 또한 그동안 가장 미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법 제도 개선을 통해 게임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동안 개발원은 자료 수집, 중소 게임개발업체를 성장시키기 위한 투자 활성화, 해외시장 개척, 게임개발 인력 교육 등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현재 개발원의 노력으로 해외시장 개척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외 다양한 업체들이 중소 업체들과 연결을 시도하기 위해 개발원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료 수집이나 정보력 부분에서도 개발원은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앞으로 게임업체들은 개발원이 법 개정 등 업체에 실제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집중되고 있다.
게임을 잘아는 개발원장
개발원은 그동안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게임산업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에 의해 움직였던만큼 게임업계 사람들과의 갈등은 초기부터 심각한 수준이었다. 초반 개발원 원장들이 대부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하차 한 것이 갈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발원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만큼 게임산업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우선 가시적이나마 해외시장 개척에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며 아케데미를 통해 산업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올해 게임산업개발원은 신임 우종식 개발원장을 선임했다.
기존 원장들과 달리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발원에서는 예전과 달리 개발원이 업체들과 좀더 친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게임산업 발전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게임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개발원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올바른 정책 입안과 중소업체들에 대한 지원, 해외시장 개척 등으로 게임업계가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확신이 생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안희찬 기자의 '온라인 게임 10년사' <10>
PC방, 온라인 게임 '최대 거점'
온라인게임이 초고속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곳은 PC방이다. 비록 PC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때문에 PC방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지만 PC방은 온라인게임의 거점 역할을 했다.
PC방을 거점으로 성공한 온라인게임은 단연 '리니지'. 이밖에도 '포트리스'가 있으며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웅문', '레드문' 등도 PC방을 통해 선두 온라인게임으로 성장했다.
PC방은 국내 온라인게임의 성장에 가장 큰 견인차 역할
PC방이 온라인게임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각 가정마다 네트워크가 보급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PC방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PC방은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 우선 마케팅 대상이 됐으며 PC방 마케팅에 주력하게 된 원인이 됐다.
PC방의 역사는 '스타크래프트'가 국민적 게임으로 성장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신림동, 신촌 등을 중심으로 PC방이 생겼으며 '스타크래프트'를 서비스했다. 1998년 IMF로 실직을 한 대다수의 사람이 PC방 개업에 나서면서 PC방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온라인게임의 발전을 더욱 부채질했다.
'스타크래프트' 서비스와 함께 PC방 업주들은 서서히 뜨기 시작한 온라인게임을 함께 서비스하며 유저들에게 게임을 알리는데 주력,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PC방을 이용하면서 PC방이 청소년들의 탈선의 장이 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PC방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속에서 PC방 업주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협회를 만들어 대응해 나갔지만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업주들의 자사이기적인 사고방식과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발전, 각 가정에서도 손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PC방의 역할은 축소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PC방 업주들은 다양한 방안을 내놓으며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재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PC방 협회에서도 이같은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전개와 PC방 업주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다.
PC방이 현재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된 상태이지만 PC방으로 인해 국내의 온라인게임이 세계적인 경쟁 상품으로 성장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록 현재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각 가정에서도 손쉽게 다양한 온라인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아직도 PC방은 온라인게임을 성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PC방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PC방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과거 PC방은 국내 온라인게임의 한 축을 담당했을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었다.
온라인게임의 유료화와 그에 따른 PC방 업주들의 부담감 증대, PC방 업주들의 사고 전환 등 앞으로 놓인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향후 PC방의 과거 인기를 다시 살리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C방 업주 '단체행동'
모 업체가 지금 난리가 났어요." 국민게임으로 불리던 '포트리스'가 유료화를 단행하던 날, CCR앞에는 PC방 업주들이 한 무리를 형성하며 농성을 벌였다. PC방 업주들에게 PC방에만 과금을 한다는 CCR의 발표는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농성은 '포트리스' 사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만큼 PC방 협회나 업주들의 농성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최근 '카스'의 유료화 선언 발표에도 PC방 협회 임원진과 업주들은 침묵 시위를 벌여 행사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PC방 업주들의 무서움을 보여줬다.
온라인게임 업체에서는 이 때문에 유료화 등을 결정할 때 PC방 업주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온라인게임 업체들에게는 '포트리스' 사건과 그후 크고 작게 발생했던 PC방 업주들의 방문 시위가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협회에서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시위 등을 자제하려는 입장이다. PC방은 온라인게임 업체들과 함께 가야 하는 동지라는 견해다. PC방 한 업주는 "PC방 협회가 데모꾼이라는 편견은 버리세요. 언제나 열려있는 곳이 PC방이랍니다"며 PC방이 이기적 집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마비노기 차세대 게임. 현재 주목 받고 있는 기술인 카툰 랜더링을 통한 게임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씰' 이나 '마비노기' 가 그 대표적인 예 하지만 마비노기는 한단계 앞서간 게임으로 평한다. 기술적으로나 앞으로 온라인 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하고 있다.
출처: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2&dir_id=2&docid=27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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